"여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
최윤은 아침부터 일어나자마자 전화가 와서 별로 기분이 좋지 못하였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전화 벨소리가 울려서 봤더니 예상 했던 대로 윤화평 이라는 석자가 휴대폰 화면 떡 하니 떠있었다. 아침마다 전화 하는 거 지치지도 않는 건지 그냥 재미가 들린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자꾸만 전화를 걸어오는 게 보이는데. 하지 말라고 해도 알아듣지를 않는다. 이걸 알아들었으면 이렇게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는데 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던가 아침에는 전화 하지 말라고, 아니 그냥 업무 외에는 전화 하지 말아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윤화평은 알겠다고 하더니 가볍게 그 말을 무시했다. 사람 말이 장난으로 보이는 건지 개똥으로 보이는 건지 알 길이 없어서 그저 퍽, 웃음이 나왔다. 자꾸 이렇게 나오면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라고 생각을 하고는 최윤은 그 전화를 받고는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입을 떼었다.
"전화 하지 마세요, 끊습니다."
"야, 최윤 잠깐만!"
"마음대로 이름 부르지 마세요."
"그래 최사원."
윤화평이라고 이러는 게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그를 본 건 그가 입사 하기 전에 면접을 보러 왔을 때였다. 자신은 면접관이었고. 이 말이 조금 웃길 지도 모르지만 자신은 그저 한눈에 반했다고 해야 할까. 그랬다. 한눈에 반해서 그를 바로 합격 시켜버렸다는 개소리고. 합격 시키고 싶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긴 했다. 그렇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이미 스펙 부분에서 너무 월등히 좋았기 때문에 무난하게 합격을 했고 자신이 했던 생각이 우습게도 그는 너무 일을 잘하기도 했다. 윤화평은 그를 쫒아 다니듯이 그에게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했던 이유는 별 거는 아니었다. 단지 관심이 가서 관심을 표현 했던 것뿐인데. 최윤은 뭐라고 할까, 너무 차갑고 그랬다. 마치 로봇인 듯 마냥. 로봇도 이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얼마나 그랬으면 회사에 그를 보고 얼음왕자니 로봇 최윤 이니 그런 별명까지 붙였겠는가. 그래도 그것도 좋기도 했다. 일단 최윤은 잘생겼고. 잘생겼으니까. 얼빠라고 해도 윤화평은 할 말이 없을 것만 같았다.
"좋아해"
"저는 아닙니다."
화평윤
Only one for me
윤화평이 입사할 당시에 지금의 회사는, 자신의 회사는 마케팅과 디자인과 관련된 회사였다. 자신과는 썩 어울리지 않는 회사였지만 어느새 지내다보니 어느 정도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곤 하지만 그렇게 썩 내키지도 않았다. 그게 몇 년이 지나니 익숙해짐이 보였다. 방침도 나쁘지는 않은 편이었다. 방침은 솔직히 완전 너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사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신으로서는 그렇게 여겼다.
방침 첫 번째, 사생활을 터치 하지 말 것.
두 번째, 회사를 마치고 나서 개인적인 연락을 일절 사절할 것.
세 번째, 사내 연애는 웬만하면 사절할 것.
네 번째, 회식은 업무의 연장선이 아님을 기억할 것.
다섯 번째, 직원을 상대로 농담이라는 말로 가장하여 놀리지 말 것.
이 방침만으로 너무 좋아서 이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것이 맞았다. 사실 이 방침만이 전부는 아니기에 디자인은 자신과 맞지는 않았다. 왜냐면 세세한 것이나 예민하게 다뤄야할 건 성격상 맞지 않아도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를 선택한 것도 아마 실수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지내다보니 어느새 팀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어째서인가 생각해봤는데 생각해보니 열심히만 했는데 그 열심히만 한 덕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게 전부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 회사에 별 다른 정은 없었는데 자신이 면접관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면접관이라고 해봐야 팀장직에 있는 사람 중 어느 정도 괜찮은 사람이면 다 하는 거라곤 하는데 사실 아닐지도 모르지만. 늘 그렇듯 별로 대단한 사람은 없겠거니 했던 것이 과오였다. 자신이 관과했던 것이다. 그 날은 면접보러 온 사람들 중에 대단한 사람이 있었다. 스펙만으로도 대단했지만 얼굴도... 대단했다. 그 날로 그는 첫 눈에 반한 거라는 건 이런거구나 하고 한 번에 깨닫게 되었다. 어째서 이런 쓸데 없는 걸로 깨닫게 되는 것도 참 의문점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조금 더 대단한 걸로 깨닫게 될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참 지나친 과오였다. 그나저나 참 잘생겼네... 사람이 웃기게도 잘생겼네. 윤화평은 면접 당시에도 멍 때리기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그와 자신이 눈을 마주쳤을 땐 그만 놀라자빠질 뻔 했다. 윤화평은 입을 다물고 있다가 입을 겨우 열고선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이상형이 어떻게 되시나요?"
"이 회사 방침은 사생활을 터치 하지 말라는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팀장 님께서 질문하시는 건 사생활에 해당되는 거 아닌가요?"
"이건 회사와 관련 없이 제가 궁금해서요."
옆에서 윤화평의 동료들이 어이 없다는 듯이 쳐다보곤 했지만 그런 걸 신경을 쓸 윤화평이 아니었기에 애써 무시를 해대고는 덤덤하게 입을 열어 그를 빤하게 쳐다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최윤은 무슨 면접관이 이런 걸 물어봐. 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입으로 내뱉을 순 없었기에 그저 허허, 웃고 말았다. 웃음으로 만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웃어보인는 것 밖에 답이 없었다. 개인적인 것을 왜 여기서 물어보냐고. 왜, 회사 질문도 아닌데 여기서 묻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합격하고 나서 묻는 게 아닌 이상은.
"답해드릴 이유는 없는 것 같지만 저보다 키가 작은 분, 그리고 귀여운 분이요."
"감사합니다."
최윤은 어이없는 심정으로 대답했다. 죽는 거 아니면 살기겠지 하는 심정으로 실제로 저런 이상형을 꿈꾸는 것은 아니겠지만 안 말하는 것보단 나을 거라는 심정으로 막 말한 것도 맞았다. 안 말하면 무안하고 말해도 그러긴 마찬가지지만 윤화평 면접관의 얼굴이 조금 화색이 도는 걸 보면 조금은 나아지겠지 싶었다. 윤화평은 대책 없이 저지른 것도 맞았다. 그저 궁금한, 자신이 궁금한 이유가 다였다. 옆에선 동료들이 뭐라고 하다가 그가 입을 열자 바로 입이 닫힌 것까지. 그저 자신이 좋아서였는데 원하는 답은 아니어도 그래도 이상형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 얼굴엔 저런 사람들이 취향이구나 하고 말이다. 그 이상형이라는 사람은 여자 친구 일까. 무엇일까 아니면 여자 친구가 있을까. 없을까 있든 없는 나와는 관련이 없는 사항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냥 물었다. 결국 그 질문의 탓으로 면접이 끝나고 윤화평은 상사에게 엄청 혼날 수밖에 없었지만.
"제정신 아니지?"
"거, 죄송하긴 한데요. 제정신 맞습니다."
"허... 말을 말자. 야, 다시 그러지만 마라."
"예, 예."
윤화평은 한참을 설교를 듣고서야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쩌지, 첫 눈에 반한 것도 처음이었고 이렇게 면접 자리에서 이러는 것도 처음이었다. 윤화평은 아마 그가 합격하면 다시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도 팀장이라는 사람이 예비 신입사원일 수도 있는 사람에게 그런 소리를 한 건 아직도 후회가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윤화평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도 그 생각으로 가득차서 일을 제때 끝내지도 못하여 야근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아니 대체 참. 이러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의 잘못인 것을. 윤화평은 투덜거리다가 결국 11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갈 수 있었다. 이 시간에 가는 것도 간만이긴 했다. 윤화평은 컴퓨터를 끄고 옷가지를 챙겨들다가 옷을 입고선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들고는 가방을 매고는 의자를 넣고선 불을 끄고 나서야 문을 닫고 나갈 수 있었다. 문을 닫고 나가는 복도의 회사는 아무도 없는 건지 캄캄하기 그지 없었다. 하기야 이 시간에 누가 있으리도 없으니까. 한 걸음 한 걸음 나가서 회사문을 닫고서 나가고 자신의 차를 타고서야 한숨을 푹 쉬고 말았다. 꿈같은 금요일에 야근이 뭐냐 야근이, 평소에도 야근은 잘 하지도 않는데 이런 날에 야근이라니 아니 뭐 억울하지는 않는데. 그래도 자신의 탓이니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거참 웃기네 윤화평은 자신의 뺨을 한 두어대 치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운전대를 잡았다. 운전대를 잡고서 자신의 집으로 향해서 차를 운전했다. 이렇게 늦게 가는 거 알면 혼이나 날 텐데. 혼나든 아니든 뭐 상관 없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영 그렇긴 하네. 윤화평은 자신의 집 근처로 다다르자 차를 주차 시키고는 차의 시동을 끄고는 운전대를 잡고는 고개를 숙이다가 고개를 올리고는 차에서 내려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다만 그가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그러려고 했겠지.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여기 맞나보네요, 이걸 전해주라 길래. 기다렸는데 오시질 않아서 가려고 하던 참 입니다."
자신의 집 앞에는 최윤이 떡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오는 걸 보았는지. 아. 하고 탄식어린 소리를 너무나 태연하게 내뱉으면서 자신의 쪽으로 다가왔다. 어째서 이 사람이 여기 있는 지에 대하여 수백 가지 생각을 그 짧은 사이에 정리할 동안에 최윤은 너무나 당연하게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여서 그만 어이가 없어서 야! 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직 우리 사원인 것도 아닌데. 근데 나보다 어린가. 아니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윤화평이 그런 생각을 할 즈음엔, 최윤은 바로 앞에 다가와서는 어떤 편지를 자신에게 전해주고는 입을 열면서 말했다. 누가 전해주라고 했다나... 근데 누가. 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다른 곳으로 가버린 뒤였다.
"뭔데...진짜."
윤화평은 뒤수숭한 마음을 뒤로 한채 자신의 집의 문을 열어서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서면서 입을 열었다. 집에는 있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자신의 할아버지 밖에 없었다. 본래는 시골에만 있겠다고 그리 고집 아닌 고집을 부리던 양반인데. 억지 아닌 억지를 겨우 겨우 부려서야 서울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다. 시골의 있는 집은 어차피 할아버지의 재산이니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늘 자신이 집에 올 때 즈음엔 밥을 차리기 시작하는데 오늘은 연락할 틈도 없이 바빴기에 전화를 하지도 못했다. 설마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으리는 없고. 자나... 싶어서 할아버지의 방으로 향했다.
"할부지, 자? 자?"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방에 누워서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다. 윤화평은 조용히 방 문을 닫고 부엌으로 향했다. 밥상이 차려져 있는 지 봐야했다. 예상 했던 대로인지... 차려져 있었다. 보나마나 한참을 기다리다가 오지 않으니 잠깐 눈을 부치러 간다는 게 아예 잠에 든 것이 분명했다. 윤화평은 한숨을 푸욱 쉬고는 부엌에 있는 밥을 대충 대워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야근한다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으니 배가 고프기도 했기 때문에. 윤화평은 그것을 보면서 퍽 웃음을 지었다. 이런 모습도 얼마 만인지. 알 길이 없었다. 오늘은 꽤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중 하나가 최윤이었다. 최윤은 면접을 보러왔고 나는 그 최윤에게 첫 눈에 반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확인을 하고 말았으니까. 그러니까 첫 눈에 반했다는 것이 되겠지. 두번 째는, 그가 자신의 집 앞에 서있었던 거. 그가 면접을 보러오고 나중에 그는 포함으로 면접하러온 사람들이 모두 갔을 때 자신이 면접 때 말한 것에 대하여 혼이 나야만 했고. 그 혼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해 생각을 하느라 일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여 야근을 해야만 했다. 결국엔 야근을 하고 이 시간에 오게 되었는데. 집 앞에 떡하니 그가 서있던 모습을 기억하는가, 나는 기억한다. 퍽 우습기 그지 없었다. 말도 없이 온 것은 물론. 물론, 자신의 연락처를 모르니 당연했지만 온 이유가 편지를 전달해주기 위해 단지 그것 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들어왔더니 할아버지는 자신을 기다리다 못해 잠이 든 상태였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혼자 밥을 먹는 것인데. 밥을 혼자 먹는 것은 물론, 이 시간에 부엌 식탁에 앉아서 먹는 것도 퍽 오랜만이었다. 평소는 할아버지와 같이 먹었기도 하고 퇴근하고 오면 이 시간에 먹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윤화평은 미소를 지어보이곤 밥을 대충 다 먹었는 지. 밥 그릇과 수저를 싱크대에 내려놓고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벌러덩 눕고야 말았다. 피곤하긴 피곤한 하루였다. 여러모로. 이런 것에 대하여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유난히 길고 피곤한 하루라고 생각이 든 하루였음을.
****
"여보세요, 네. 윤화평 입니다. 아. 그거 오늘이었어요? 저는 내일인 줄 알고 미뤘더니. 차암. 알겠어요 신입 제가 받으면 되는 거죠?"
"아, 그러다니까! 얼른 가."
"예이, 예이. 갑니다 가."
윤화평은 아침부터 회사에서 회사 전화기를 붙잡고선, 입을 떼면서 말했다. 분명 저 주임 색, 기가. 미리 미리 말해줄 것이지. 자신도 까먹은 탓도 있지만 그가 다시 말해주지 않은 탓도 있다. 날짜가 변경 됐으면 됐다고 하던가. 아이고 조지나 뱅뱅이다. 증말. 저 사람은 매번 일정이 변경 되어도 당일날 말해서 여러가지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매번 미리 말해달라고 해도 아주 듣지를 않아요. 아주 지 좆대로 굴러만 가지. 그러다가 언젠간 꼭 망해버려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내딛었다. 하아. 정말. 개같지만 애써 미소를 장착라고는 신입이 있는 곳으로 항해 나갔고. 근처에 다다르자 익숙한 얼굴이 보여서 조금 흠칫했다. 역시 들어 왔구나 해서.
"안녕하세요, 윤화평 팀장입니다. 디자인 팀장 이고. 제가 이 회사에 대해서 간단한 소개와 부속팀들 그리고 어디에 소속될 것인지 소개 해드릴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익숙한 얼굴에 시선을 잠깐 돌리고는 걸음을 내딛으며 회사를 소개 했다. 사실 회사 소개라고 해봐야. 자신이 늘 가던 곳과 조금 안 가던 곳들을 대략적으로 알려주는 것 밖에 없었다. 여기는 회의실, 여기는 업무실. 그리고 여기는 작업실. 등등. 그렇게 소개를 마치고 소속될 팀에 대해서 알려줘야 했다.
"먼저, 이청 씨는 마케팅. 윤 서 씨는 디자인. 최윤 디자인 제 소속이네요. 그리고... 김재명 디자인. 최 서인 마케팅. 입니다. 이상이고 앞으로는 배속 받은 팀의 팀장에게 지시와 업무를 받게 될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고는 평은 최윤을 빤히 쳐다보고는 살짝 웃어보였다. 정말이지 진짜 들어왔네. 정말 잘생겼네. 윤화평은 생각에 잠겨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는 말과 최윤과 자신의 소속 두명을 데리고 자기 팀으로 돌아갔다. 돌아가서는 팀에 이 두 세 사람이 함께 하게되었다는 간단한 소개만을 할 뿐. 그리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기지개를 폈다. 겨우 끝났네. 최윤이랑... 같이 일을 하다니. 어우. 상상만 해도 정말... 큰일이었다. 첫만남부터 이상형이 어떤 사람인가요? 라고 대놓고 말한 것도 모잘라서 면접하는 자리에서 면접관인 사람이 그렇게 대놓고 물어댔으니 큰일이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런 것치고는 최윤은 너무 아무렇지 않았고 태연했다.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하는 것 같은 사람처럼. 혹은 그 일을 까먹은 사람처럼 그렇게 굴어댔다. 정말 그럴 리도 없지만. 단지 무시하는 게 분명했으리라고 그렇게 생각을 해댔다. 어차피 이런 생각을 할 시간도 없었다. 일은 많았고 시간은 없었기 때문에. 쓸데 없이 일은 많았고 업무가 많았기에.
"저 팀장 님..."
"어? 뭔데, 왜?"
"이걸 모르겠어서... 어떻게 해야하는 지."
"그거, 값만 줄이면 되는데. 거기 툴 보이지? 거기에서 값을 조금만 낮춰 봐."
"아... 감사합니다."
"어, 별 것도 아닌데."
아무렇지 않게 물어오는 것을 보면, 애써 모른 척을 하거나 그런 것 중에 하나였다. 나중에...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불러서 물어나 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윤화평이었지만 그게 맘대로 될 리가 없는 건 아니어도 그때까지 시간이 한참이나 남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지금으로부터 4시간. 그때까지 일이나 하지. 윤화평은. 지금 하고 있는 이 디자인 작업도 별로 중요한 건 아닌데 과장이라는 새끼가 하도 빨리 하라고 독촉을 하는 바람에 급하게 하는 것이었다.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데 매번 보채기만 할 뿐. 그게 그렇게 급하면 지가 하던가. 자기는 하지도 않으면서 말만 많아요 아주. 내가 기필코 저 새끼는 내보내고 만다. 아니면 내가 더 직급이 높아져서 저 새끼 모가지를 잘라내던가. 그 중에 하나 밖에 없겠다. 안 그럼 제 명에 살지를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자꾸만 들었다. 내가 저 사람을 없애는 한이 있어도 같이 일 하는 건 그렇게 오래는 못 간다는 건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하도 트집을 얼마나 잡는 지 아마도 이건 직원들 대부분은 알 거다. 저 과장이 그렇게 트집을 잡는다는 건. 윤화평은 머리를 헤집고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래도 다행이지 저 과장이 오늘은 신입사원이 온 덕인지 정신이 없어서 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팀으로 아직은 오질 않았다. 매일 같이 오던 사람이 안 오니 얼마나 좋은 지 모를 일이었다. 덕분에 일도 금방 끝낼 수 있었다. 아예 끝난 건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끝냈었고. 곧 있으면 점심 시간이었기에. 5 4 3 2 1 0. 점심 시간이다. 윤화평은 일어나서 팀원들을 향해서 말했다.
"점심 시간 입니다, 점심들 먹고 오고 쉬다가 하시죠."
"네"
"아, 맞다. 최윤 씨는 저랑 잠깐 같이 나가실래요? 밥도 같이 먹고 이야기도 좀 드릴 게 있어서요."
"네, 네."
그렇게 말하고는 윤화평은 최윤과 같이 회사를 나와.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들렀다. 최윤은 이 근처를 잘 모르기에. 대충 자신이 자주 가는 식당으로 향했다. 그곳은 우리 직원들이나 사원들이 종종 가기에 거기 주인들도 윤화평과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고. 거의 단골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번에도 그곳에 있는 사람이 윤화평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여 화평도 그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를 해대며 늘 먹는 걸로 대충 말하고는 최윤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물컵에 물을 따라서 한 모금 마셔대고는 그를 마주했다.
"별 건 아니고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저번에 알지. 면접할 때 내가 물었던 거."
"네, 기억해요."
"기억하면서 그랬어?"
"네, 회사니까요."
"그럼 이상형도 진짜야?"
"어 나름...이요."
"그럼 내가 너한테 고백해도 돼?"
"네, 아니 네?!"
최윤은 놀라고 말았다. 그저 네네, 하는 식으로 대충 대답해주고 있었다. 기억하던 것도 맞고. 회사니까 인 것도 맞았다. 회사라서 대충 무시하고 있다가 나중에 퇴근하면 제대로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게 무산되었다. 윤화평이 먼저 되물어왔기 때문이다. 뭔가 성격이 급해 보이긴 했는데 정말 급하긴 했는 지. 그나저나... 고백이라니, 고백을 왜? 내가 좋나. 순간적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말았다. 어째서 갑자기 이런 소리인지. 아닌 지 아니 팀장이잖아. 일단 나는 신입사원이고 무슨 개소리이냐고 할 수도 없지 않을까.
"말 그대로 너한테 고백 해도 되냐고, 나 너 처음 보는 날 반했거든. 안 믿길 수 있는 거 아는데 그냥 그래도 질러보는 거야. 나 너 좋아해."
"생각 좀 해도 될까요?"
"그래, 일단 밥 먹자. 밥 나왔거든."
"네... 네."
그렇게 서로가 말하는 동안에는 주문시킨 식사가 나왔고 윤화평은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수저를 들고선 밥을 먹기 시작했고 최윤은 한참을 그러한 윤화평을 바라보다가 겨우 아. 하고 탄식 어린 말을 내뱉더니 그제서야 수저를 들어 한 숟갈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첫 눈에 반했다는 게 가능한 걸까. 그리고 그게 진심인 걸까. 내가 뭐라고. 내가 뭐길래, 첫 눈에 반하긴 반해. 반할 구석이 없다고 생각했다. 무뚝뚝하고 말도 별로 없고 말주변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스펙은 공부를 열심히 한 덗이었지. 자격증도 열심히 한 덗이었을 뿐이다. 정말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윤화평은 식사를 마쳤는 지 최윤이 다먹을 때까지 최윤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최윤은 시선을 느끼면서 겨우 식사를 마치고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가자."
"네."
최윤은 그의 말에 일어나서는 신발을 신고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최윤이 먼저 앞장 서서 갔다. 최윤이 앞장을 서서가다가 벌을 삐긋할 뻔하자. 윤화평이 놀라서 그를 잡고 말았다. 순간 서로가 경직되었지만 윤화평은 미안...하는 작은 소리가 나왔고. 최윤은 아닙니다. 하는 그런 말 뿐이었다. 그 이후는 말도 없이 조용히 회사로 돌아가서는 업무를 하는 것밖에 없었다. 오늘따라 왜 이런 지. 고백하려는 것도 아니었는데 어떨결에 하고야 말았고 잡아준다는 게 너무 세게 잡은 것 같고 참. 아이런이 한 하루였다. 점심 시간이 끝나고, 몇 시간 정도가 지나자 거의 마칠 시간이 되었다. 마칠 때 같이 가자고 하려다가 아까 점심 시간 때가 생각 나 말이 잘 꺼내지지가 않았다. 최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그게 안될 리는 없으니까 그래도 아니 그래도 이런 생각만 교차할 뿐이었다. 그래도 먼저 말한 건 윤화평이었다.
"야, 최윤 갈 때 같이 갈래?"
"네...네."
****
마치고 가방을 정리해서 들고 오고나서는, 윤화평은 자신의 자리를 대충 정리를 하고는 최윤을 바라봤다. 최윤도 정리가 거의 끝나 갔었고 그런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자신을 보는 최윤과 시선이 교차하고야 말았다. 시선이 교차하는 걸 느낀 윤화평은 아. 하고 짧은 탄식이 흘렀고 최윤도 마찬가지였다. 짧은 탄식이 교차 되자. 윤화평은 가자라는 말과 함께 걸음을 내딛었다. 이럴 때...가 제일 민망한데 내가 그를 보고 있었다는 걸 들킬 때가 가장. 민망한 순간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말 없이 걸어가다가 윤화평이 먼저 운을 띄웠다.
"그래서... 생각 해봤어?"
"네."
"어떤데.?"
"좋아요... 좋은 것 같아요."
"그럼 나랑 사귀는 거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나야말로."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략 그렇게 되었다. 그 말을 끝으로 둘은 말이 없었고 서로의 집으로 갈 때까지 서로는 그저. 시선을 교차하거나 교차한 순간에 놀라서 시선을 돌리거나 그럴 뿐인 상태였다. 부끄러워하는 건 최윤 몫이었다. 윤화평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굳이 시선을 돌리는 것이었다.
****
“여보세요?”
“네, 최윤입니다.”
“어, 나야 윤화평.”
아침부터 전화를 하지를 않나. 이쯤 되면 윤화평도 지칠 만도 하는데 계속 전화를 해왔다. 그럴 때마다 전화를 끊었는데도 사귄다고는 하지만 이럴 줄은, 사실 귀찮은 건 아니었지만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하는 게 문제였다. 시도 때도 하는 게 아니라면 충분히 받아줄만 한데도 아침에도 전화를 하고 점심시간에도 그리고 저녁에도 낮에도 화장실에도 해대니까 그게 문제였다. 하지 말라고 해도 그만둘 사람이 아니니 이렇게 받아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뭡니까.”
“사랑한다고.”
“끊습니다.”
“아 끊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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